'무술에 관한 짧은 생각'에 해당되는 글 5건
- 2011.05.23 '합기도'라는 명칭에 대한 소견. 2
- 2007.12.30 무술의 가치와 의의 2
- 2007.08.27 일본의 무술용어 2
- 2007.07.17 일본의 도장 사정.
- 2007.06.07 일본의 무술용어 1
합기도 명칭에 대한 논란이 식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여기서 밝히는 제 사견과는 별도로, 한국의 합기도 및 아이키도 단체를 이끄시는 선배 무술인 여러분들께는 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음을 분명히하겠습니다.
1. 합기도 명칭은 누가 먼저 사용했는가?
사실 合氣道 라는 한자 명칭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1942년 '大日本武徳会[다이닛뽄부토쿠카이]'로, 이 무술은 현재 '光輪洞合気道[코린도아이키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즉, 사실상 아이키도란 이름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우에시바 모리헤이도, 그가 만든 '아이키카이(合気会)'도 아닙니다.
게다가 무덕회 당시 아이키도라는 이름을 발안한 사람은 무덕회 임원이었던 久富達夫(히사토미 타츠오) 씨로, 모리헤이와는 관계 없는 강도관(講道館) 출신입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게 된 영향으로 대일본무덕회가 해산하게 되자,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1948년에 이르러서야 스스로가 창시한 무술을 '아이키도(合気道)'라 칭하게 됩니다. 아이키도란 이름이 처음 만들어지고 6년이나 지난 후의 일입니다.
<코린도 계열 아이키도 成新会合氣道>
2. 동일한 표기를 사용하는데 따른 혼란?
이제까지 일본에서는 아이키카이(合気会)'외에도, 모리헤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상당수의 단체가 '아이키도(合気道)란 이름을 앞세워 활동해왔습니다.
앞서 말한 대일본무덕회 계통의 무술을 계승한 '코린도 아이키도(光輪洞合気道)'가 그러하며 - 무덕회 당시 아이키도부의 운영을 담당했던 관계로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平井稔(히라이 미노루)가 모리헤이의 문인이기도 합니다만, 대일본무덕회의 아이키도는 모리헤이의 무술이 아닌, 대일본무덕회의 역량을 모아 개발한 종합무술이므로 다른 무술이라 보는 시각이 일반적입니다. 드러나는 모습이나 지향하는 바 원리에 있어서는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만, 성립이나 기술체계에 있어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실제 일본에서는 서로 다른 무술로 보고 있습니다. -, '합기도의 과학'으로 우리 나라에 알려진 요시마루 사다오(吉丸貞雄 ; 호는 慶雪) 씨가 내세운 '다이토류덴 아이키도[大東流伝合気道]'가 그러합니다. 또한, 블럭격파 같은 강렬한 시범으로 유명한 '무겐류 아이키도[無限流合気道]'도 마찬가지고요.
같은 계보에서 갈라선 단체까지 포함하면 더욱 많은 숫자의 단체가 일본 현지 및 해외에서 '아이키도[合気道]'란 한자 표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발전한 '풀컨택트 아이키도' 계열을 포함)
3. GAISF 가맹 문제?
GAISF 에는 국제 '풋볼(축구)' 경기단체가 가입되어 있습니다. 영어로 International Football Association, 프랑스어로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이라고 하는, 다들 아시는 피파(FIFA)가 바로 그 곳입니다. 미국에서 '풋볼'이라고 하면 절대다수가 미식축구를 떠올립니다만, 그럼 미국 풋볼은 이름을 바꿔야 할까요?
그런데 GAISF에는 '미식 축구' 단체도 당당히 가입해 있습니다. (International Federation of American Football) 물론, 미식축구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럭비도 가입해 있지요. (International Rugby Board)
GAISF에는 '국제무술연맹(國際武術連盟)'이란 단체도 가맹되어 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국제 '우슈' 연맹이지요.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근접전투기술에 대해 무술이란 단어를 써서는 안 되는걸까요?
골프와 미니골프(Golf, Mini Golf), 테니스와 소프트 테니스, 테이블 테니스(Tennis, Soft Tennis, Table Tennis) 등등...
경기 형식의 유사성이 문제가 된다면, GAISF에는 '무에타이'와 킥복싱'이라는 대단히 흡사한 두 경기 단체가 동시에 가입되어 있다는 전례가 있습니다. 명칭의 고유성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선례가 존재합니다. 하물며 GAISF에 가맹하는 경기 명칭은 알파벳 표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앞서 든 예와 비교하자면, 합기도와 아이키도의 알파벳 표기는 유사하다 보기 어렵습니다.
4. 한국 합기도의 보급률은 아이키도에게 빚진 바 없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일본내 아이키도 수련 인구가 약 백만명이라고 합니다.
합기도 수련 인구는, 2007년 대한정형외과 스포츠의학회 논문에 따르면 약 3백만, 대한합기도경기연맹에 따르면 약 2백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1억 2천만의 일본 인구를 생각하면, 로컬시장의 크기를 차이를 생각해볼때 비해 한국 합기도의 상대적 성공은 대단히 놀라운 성과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합기도'란 이름의 인지도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합기도'란 이름을 모르는 한국인을 찾기 어려울 정도니까요. 이런 한국 합기도의 인지도는, '일본의 유명한 무술인'의 이름을 빌려 얻어진 결과도 아니요, 일본의 유명한 무술 이름을 차용해 얻어진 결과 또한 아닙니다.
한국에 아이키도가 자리잡기까지, 아이키도 지도자 여러분이 기울여온 수많은 노력과, 수십차례에 걸쳐 일본 현지의 선생님들을 한국으로 모셔 초청 강습회를 여는 등 한국 무술계 발전에 기여하신데 대해서는 늘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 아이키도가 '합기도'라는 이름으로 한국 시장에 자리잡으려 한다면, 그 모든 노력들이 빛이 바래, 자칫 한국 '합기도'가 닦아놓은 성과에 무임승차하는 것으로 보일까 심히 우려됩니다.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오늘은 무술의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가운데, '무술 9단이 싸움 9단 못 이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 말에는 사실 두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요. 오늘 이야기는그 중에 첫번째에 대해 이야기입니다.
내일은 마침 현대 격투기의 정점에 선 '60억 분의 1' 격투 천재 표도르와, 천부의 체격을 타고 난 최홍만이라는 두 괴물의 승부가 벌어지게 되는군요.
첫번째는 바로 '재능'의 벽에 대한 것입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 딱히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날때부터 싸우는 법을 알거나, 실제로 싸움을 겪으면서 가장 효율적인 싸움 방법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격투 센스'를 타고난 사람이바로 이 '싸움 9단'에 속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다른 모든 종목도 그렇습니다만 무술 분야 역시 타고난 재능과 육체를 극복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계량화해서증명하기는 어려운 '격투 센스' 같은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도, 눈에 띄게 구별이 되는 '체급의 차이'란 요소 역시 승패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지요.타고난 체격, 좋은 몸 역시 '재능'의 한 종류라는 점,무서운 무기가 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겁니다.
우선 그래플러들을 볼까요? 이쪽은 '한방'이 아닌 만큼 확실히 스트라이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신체조건의 차이를 극복하기가 쉬워보입니다. 실제로 체급 차이가 나는 것을 기량으로 커버하여 승리하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고요. 그러나 여기에도 분명히 현실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신체조건의 차이가 중요하지 않다면, 유도나 레슬링 역시 굳이 '체급별 경기'를 치르지 않겠지요.
씨름계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체중이 30킬로그램 이상 차이가 나면 기술이든 뭐든 백약이 무효다.' 씨름계에 최홍만, 김영현 같은 거인 씨름선수가 계속 등장하였던 이유도, 스모 선수들이 몸을 불리는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체중과 타고난 근력은 어떤 상황에서건 강력한 무기이며, 이 무기들이 '기술'을 더욱 빛나게 해줄 수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같은 기량에서라면 체중과 근력이 나은 쪽이 유리한 것은 물리적인 '현실' 이니까요.
구체적인 표현에 다소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복싱에선 '헤비급의 잽은 밴텀급의 KO펀치'와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말 그대로, 헤비급의 골격과 체중에서 우러나오는 파워는 경량급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강력함이 있다는 의미지요.
올림픽 등 기록경기의 영향과 그에 따른 엘리트 스포츠의 발달은, 현대 의학에서 비롯된 인체에 대한 이해에 기반하여 트레이닝 기법을 고도로 발달시켜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파워 리프팅을 비롯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근력을 기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고, 많은 선수들이 과학적인 트레이닝 기법 하에 기량을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대화된 트레이닝 기법으로도 타고난 펀치력의 한계, 근력의 한계를 극복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경량급에도 하드펀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진 이 강력한 펀치는 '타고나는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트레이닝으로 어느정도 펀치력을 기를 수는 있지만, 누구나 하드펀처가 될 수는 없는 슬픈 현실.
'싸움'이란 영역에는 이렇게 노력으로는 넘을 수 없는 재능의 벽이 존재합니다. 메울 수 없는 타고난 신체조건의 차이가.
무술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짐승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 혹은 사냥을 위한 기술, 집단전투를 위한 수련체계 등등...
제가 생각하는 무술의 기원은 이렇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던 '싸움 9단', 바로 그 '타고 난 자'를 이기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무술이라고.
싸우는 재주를 타고난 사람은 누군가에게 따로 싸우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천재가 너무나 쉽게 움직이는 몸놀림, 휘두르는 펀치가 다른 사람에게는 쉬운 것이 아닌 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천재가 할 수 있는 것을 일반인이 바로 따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천재가 '그냥 하면 되는' 것을, 일반인의 관점에서 과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연구하여, 방법을 찾아내 정리한 것이 무술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근력을 단련하는 것만으로는 끌어올릴 수 없었던, 강력한 펀치력에 대한 대답이 우리가 '발경'이라 부르는 것이고, 그래플링 상황에서의 효율적인 힘쓰기가 '합기'라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출발점이 같은 이 두가지 기법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천재는 무술을 만들 수 없습니다. 스스로 강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남들이 왜 자신처럼 할 수 없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자신처럼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하면' 된다는 거죠.
무술은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는가'에대한 탐구의 결과이며, 그렇기에 천재의 강함은 그냥 개인의 강함일 뿐, 본질적으로 '무술'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단련해서 강해지는 것'이야말로 무술의 본질이며 가치인 것이지요.
이번에 말씀드릴 내용은, 사실 일본 무술에 대해 약간의 지식만 있는 분이면 알고 계실만한 내용입니다.
현행 태권도, 유도, 합기도, 검도, 공수도, 절권도 등 20세기에 들어 정립된 많은 무술들은 몇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중 한가지는 무술 이름 작명법이 한가지 공통된 유행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도'라는 글자로 끝난다는 점.
이 유행은 '니혼덴 코도칸 쥬도'의 창시자 카노 지고로 씨가 무술 시대의 종막을 예언하며 '체육'으로서의 무술 '유도[쥬도]'를 창시한데서 출발합니다. '강도관(도를 가르치는 곳)'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기서 말하는 '도'의 뜻은 -물론 심오한 의미의 도, 무도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만- 엄밀히 말하자면 쿠베르탱이 제창했던 근대 스포츠의 이념중 하나인 운동을 통한 인격 형성, 즉 스포츠맨십을 의미하는 면이 큽니다. IOC 위원을 지내기도 한 카노 지고로의 경력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보통 유도의 성립에 영향을 끼친 무술로 텐신진요류, 키토류 유술을 꼽습니다만, 기술과 경기규칙 등의 제정에 있어 레슬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고류 유술계를 평정한 유도의 붐은 다른 무술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이처럼 무술 이름에 '도'라는 이름을 유행시켰다는 점 외에도, 인증체계의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바둑에서 차용한 '단/급'체계의 도입, 바로 벨트 시스템이 그것입니다.
이전 일본 무술의 수련 체계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형태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초전, 중전, 오전, (비전)
유파에 따라 3단계이기도 하고, 4단계인 경우도 있는데요. 뒷쪽 단계는 기본에 대한 응용기법의 단계라고 할 수 있고 유파마다 구분이 달라집니다만, 초전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통적인 면이 있습니다.
즉 기본이 중요하다, 처음 기초가 단단해야 한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무술에서 초전은 처음 입문자가 배우는 단계이면서 대체로 해당 유파의 '오의', 즉 해당 무술의 핵심을 담고 있다는 것이지요.
보통 각 단계를 수료할 때마다 해당 교육과정의 교육내용(기술 이름)을 적어놓은 족자형 두루말이 -마키모노라고 합니다-를 받게 되는데, 이게 한국에서 소위 '목록'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일정 단계를 이수한 이후에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도장 '사범'자격을 주는데 이를 '교수대리'라 합니다. 태권도나 유도로 말하자면 4단이나 5단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수료하여 더이상 가르칠 게 없으니 독립해도 좋다는 인정을 받게 될 때를 비로소 '면허개전'이라고 합니다. '개전'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전했다는 뜻으로, 유파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6단에서 7단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종래의 복잡한 인증 시스템에 비해 간략하고 직관적인 이 새로운 인증 시스템은, 몇 가지 장점 때문에 근대 이후 정립된 무술 대부분이 도입하기에 이릅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좋다는 장점 -'단증 장사'라는 아니라 수련 기간, 즉 출석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로-, 세부 단계를 마련함으로서 수련자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한다는 점, 그리고 보급에 용이하다는 점이 그것이지요.
그밖에 대일본무덕회-말하자면 중국무술의 정무체육회 정도?-를 기점으로 퍼지게 된 '연사', '교사', '범사'등의 칭호가 있는데, 보통 연사가 5, 6단 정도, 교사가 6, 7단 정도, 범사가 7, 8단 정도 이상에 붙습니다. 대한검도회에서 말하는 '연사, 교사, 범사' 칭호 역시 일본의 그것과 완전히 같은 것이라 보시면 됩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일본에는 전통적으로 목조 가옥이 많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도 지은지 30년 된 목조 2층집입니다. 오래된 목조 가옥은 태풍이나 내리치는 빗발 같은 윗쪽에서 부터의 압력에는 그럭저럭 버팁니다만, 좌우로 흔들리는 지진파에는 쉽사리 무너지는 편이라고 하지요.
일본의 도장 사정은 사실 한국과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연이어 개최되는 격투기 시합,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도, 검도, 카라테 등의 현대 무술, 그밖의 각종 고류 무술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일본은 무술의 천국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한 편으로 도장 한 군데 없는 동네가 대부분인 것이 일본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한국처럼 일본에 봉고차 운행하는 도장이 있다면 떼돈을 벌 것'이란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만, 이게 꼭 농담만은 아닌 것이 일본의 현실이지요.
대부분의 일본 무술가들은 - 우리가 이름쯤 들어보았음직한 유파를 포함하여 - 자기 무술 이름으로 된 상설 도장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동류 육방회 (다이토류 록포카이) 처럼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체육시설을 특정 요일 특정 시간대만 임대한다든가, 대동류 행도회 (다이토류 코도카이) 처럼 다른 용도의 사설 체육관을 특정 요일 특정 시간대만 임대해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때문에 수련일자에 따라 수련장소가 종종 바뀌기도 하고, 아무리 유명 무술 종가라 해도 일주일에 한두번, 주말 한두시간만 수련하는 '파트타임 무술가'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오노하 잇토류의 사사모리 종가나, 대동류의 콘도 본부장 처럼 조금 여유가 있는 개인사업자의 경우는 자기 직장에 도장을 갖추어 놓고 있는 경우도 드물게는 있습니다만, 보통 메이저 무술이 아닌 이상 상설 도장을 가진 전업 무술가는 극히 드물고, 그나마 도장을 갖고 있어도 허름하고 낙후된 건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무술로 돈을 벌기는 어렵다는 말이지요.
공공체육시설을 빌려 운동하는 경우는 차라리 낫습니다만, 허름한 상설 도장을 갖고 있는 분들이나, 혹은 남의 도장을 일정시간만 빌려서 운동하던 분들은 어느정도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의 불안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지진만 해도 토쿄 인근이야 괜찮겠습니다만, '코시히카리'의 본고장 니이가타 지역이라면 낡은 목조 도장이 무사하지 못했을 수 있으니까요.
일본의 경우 단체에 따라 수장을 표현하는 용어가 조금씩 다르지요.
잘 아시듯 쿄쿠신 카라테(극진공수)의 경우 극진회관의 '관장'이란 표현을 씁니다. 여기서의 관장이란 표현은 한개 체육시설의 장을 이야기하는 의미는 물론 아니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근본적으로 하나의 무술에 대해서 하나의 도장을 출발점으로 삼는 시각은, 아이키도의 요신칸(양신관)이나 호쿠신잇토류(북신일도류)의 토부칸(동무관), 겐부칸(현무관), 그밖에 실전검술, 검술을 위한 체술 등으로 대단히 명성이 높은 쿠로다 테츠잔의 '신부칸(진무관)'이나, 닌자들의 기법을 바탕으로 무도체술을 가르치는 하츠미 마사아키의 '부신칸(무신관)' 등 일본 무술 전반에 걸쳐 상당히 널리 퍼져있는 편입니다.
'장'을 의미하는 또다른 표현으로 '소우케(종가)'란 표현이 있는데요. 종가란 표현 역시 기본적으로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듯 일파의 종주를 의미하긴 합니다만, 단어 속에 '가문'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가령, 시오다 고조의 아들 시오다 야스히사 씨는, 가업을 물려받아 '요신칸 아이키도'의 종가가 되었으나 요신칸이란 단체의 수장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하나의 문파 개념으로 제자를 모집해온 중국무술에 비해, 일본의 경우 '가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뜻으로, 이는 오랜 막부시대를 거치며 직업선택과 거소이전의 자유를 박탈당했던 일본의 문화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흔히 말하는 일본의 '장인정신'이나 몇 대를 이어오는 '시니세' 등의 전통 역시, '어차피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으니 내가 하는 이 일만이라도 적어도 일본 제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발상에서 나오게 되었다는 학설을 인정한다고 한다면, 무술에 있어 '종가'의 개념 역시 수대째 가업을 계승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과거 일본 사회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 요신칸 2대 종가 시오다 야스히사>
봉룡원 심권의 시미즈 아스카 씨나 대동류 육방회의 오카모토 세이고 씨는 '종사'라는 표현을 씁니다. 기본적으로 '종가(소우케)'와 마찬가지로 일파의 종주라는 의미인데, 오카모토 세이고 씨의 경우는 조금 의미가 특별해서, 스스로는 '대동류의 종가'가 아니며 단지 어디까지나 스스로 세운 단체의 수장임을 나타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동류 현 종가는 타케다 세이슈 [마사노부] 씨 입니다. 오카모토 씨는 스승 호리카와 코도가 세운 '코도카이(코도회)'란 단체에서 독립하여 스스로 '육방회(록포카이)'란 단체를 세웠습니다.)
이런 수장에 대한 표현 외에, 일본에서는 지도자에 대해 '시항(사범)'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요. 말 그대로 무술 지도자를 의미합니다만, 알고계시듯 한국에서와는 그 쓰임이 조금 다릅니다. 한국은 어느 체육관의 오너(관장)가 고용한 무술지도원 정도의 의미로 주로 젊은 사람을 지칭하는 반면, 일본의 경우는 그 유파에서 손꼽히는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명칭이지요. 무협소설 식으로 말하자면 '장로'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일본 무술의 일반적인 학습체계에 대한 용어와 단, 급, 교수대리, 면허개전 등에 대해 대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