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오늘은 무술의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가운데, '무술 9단이 싸움 9단 못 이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 말에는 사실 두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요. 오늘 이야기는그 중에 첫번째에 대해 이야기입니다.
내일은 마침 현대 격투기의 정점에 선 '60억 분의 1' 격투 천재 표도르와, 천부의 체격을 타고 난 최홍만이라는 두 괴물의 승부가 벌어지게 되는군요.
첫번째는 바로 '재능'의 벽에 대한 것입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 딱히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날때부터 싸우는 법을 알거나, 실제로 싸움을 겪으면서 가장 효율적인 싸움 방법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격투 센스'를 타고난 사람이바로 이 '싸움 9단'에 속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다른 모든 종목도 그렇습니다만 무술 분야 역시 타고난 재능과 육체를 극복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계량화해서증명하기는 어려운 '격투 센스' 같은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도, 눈에 띄게 구별이 되는 '체급의 차이'란 요소 역시 승패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지요.타고난 체격, 좋은 몸 역시 '재능'의 한 종류라는 점,무서운 무기가 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겁니다.
우선 그래플러들을 볼까요? 이쪽은 '한방'이 아닌 만큼 확실히 스트라이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신체조건의 차이를 극복하기가 쉬워보입니다. 실제로 체급 차이가 나는 것을 기량으로 커버하여 승리하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고요. 그러나 여기에도 분명히 현실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신체조건의 차이가 중요하지 않다면, 유도나 레슬링 역시 굳이 '체급별 경기'를 치르지 않겠지요.
씨름계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체중이 30킬로그램 이상 차이가 나면 기술이든 뭐든 백약이 무효다.' 씨름계에 최홍만, 김영현 같은 거인 씨름선수가 계속 등장하였던 이유도, 스모 선수들이 몸을 불리는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체중과 타고난 근력은 어떤 상황에서건 강력한 무기이며, 이 무기들이 '기술'을 더욱 빛나게 해줄 수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같은 기량에서라면 체중과 근력이 나은 쪽이 유리한 것은 물리적인 '현실' 이니까요.
구체적인 표현에 다소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복싱에선 '헤비급의 잽은 밴텀급의 KO펀치'와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말 그대로, 헤비급의 골격과 체중에서 우러나오는 파워는 경량급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강력함이 있다는 의미지요.
올림픽 등 기록경기의 영향과 그에 따른 엘리트 스포츠의 발달은, 현대 의학에서 비롯된 인체에 대한 이해에 기반하여 트레이닝 기법을 고도로 발달시켜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파워 리프팅을 비롯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근력을 기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고, 많은 선수들이 과학적인 트레이닝 기법 하에 기량을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대화된 트레이닝 기법으로도 타고난 펀치력의 한계, 근력의 한계를 극복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경량급에도 하드펀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진 이 강력한 펀치는 '타고나는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트레이닝으로 어느정도 펀치력을 기를 수는 있지만, 누구나 하드펀처가 될 수는 없는 슬픈 현실.
'싸움'이란 영역에는 이렇게 노력으로는 넘을 수 없는 재능의 벽이 존재합니다. 메울 수 없는 타고난 신체조건의 차이가.
무술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짐승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 혹은 사냥을 위한 기술, 집단전투를 위한 수련체계 등등...
제가 생각하는 무술의 기원은 이렇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던 '싸움 9단', 바로 그 '타고 난 자'를 이기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무술이라고.
싸우는 재주를 타고난 사람은 누군가에게 따로 싸우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천재가 너무나 쉽게 움직이는 몸놀림, 휘두르는 펀치가 다른 사람에게는 쉬운 것이 아닌 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천재가 할 수 있는 것을 일반인이 바로 따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천재가 '그냥 하면 되는' 것을, 일반인의 관점에서 과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연구하여, 방법을 찾아내 정리한 것이 무술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근력을 단련하는 것만으로는 끌어올릴 수 없었던, 강력한 펀치력에 대한 대답이 우리가 '발경'이라 부르는 것이고, 그래플링 상황에서의 효율적인 힘쓰기가 '합기'라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출발점이 같은 이 두가지 기법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천재는 무술을 만들 수 없습니다. 스스로 강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남들이 왜 자신처럼 할 수 없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자신처럼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하면' 된다는 거죠.
무술은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는가'에대한 탐구의 결과이며, 그렇기에 천재의 강함은 그냥 개인의 강함일 뿐, 본질적으로 '무술'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단련해서 강해지는 것'이야말로 무술의 본질이며 가치인 것이지요.
한달만의 포스팅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무술은 상당히 유명한지라 다들 알고 계실듯 한데요. '슈토'를 창시했던 초대 타이거 마스크 사야마 사토루가 제창한 무술, 바로 '세이켄 신카게류'입니다.
세이켄 신카게류- 이하 세이켄 -는 소위 '시가지형 실전격투기'를 표방하고 있지라 여러가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콘크리트 바닥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그라운드 상황에 대해서는 꽤나 빡빡한 룰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업어치기 등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경우 패하는 것으로 간주, 테익다운 당하여 깔렸을 경우 대단히 불리한 판정을 받는 것이 있겠군요.
기본적으로 '쓰러지지 않고 이긴다'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어-
- 그라운드 기술로 가기 전에 타격으로 결정짓는다.
- 상대가 쓰러졌을 경우, 그래플링 기술 보다는 파운딩을 노린다.
- 혹은, 상대가 쓰러졌을 경우 다시 스탠딩 상황으로 이끈다.
-와 같은 처리방식 기본 중, 1번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판크라스 코리아 사무국장이자 격투기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기태 씨는 이를 일본식 표현을 빌어 '타-투-타'로 설명하시더군요. 가장 가깝기로는 미르코 필로포비치가 종합 무대에서 보인 격투 스타일이 있겠습니다.
두번째로는세이켄유단자들만이 입는 독특한 도복을 들 수 있겠군요. 세이켄에서는 도시, 시가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복장, 바로 비즈니스 수트를 상정한 도복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도복띠를 풀어버리면 평범한 일반 수트와 동일한 디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발도 비즈니스 슈즈를 신고 있지요.
디자인 센스를 칭찬하긴 어렵겠습니다만, 보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훈련을 목적으로 한 것인 만큼, 발상 자체에는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학창시절 아마추어 레슬링과 유도를 배웠고, 프로 '레슬러'로 활동했던 사야마 사토루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것이 '타격' 위주의 격투기라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세이켄 역시 한국의 공권유술처럼 사실상 현대 격투기로 보아야 옳겠지만, 자타공인 '극우파'에 정신론, 부시도(무사도), 부시카라테(무사 공수), 사무라이, 할복 따위를부르짖는 그 '사야마'란 인물이 내놓은 세이켄이니 만큼, 마인드 만큼은 '무술'로 보아야겠지요. 무엇보다 기본 구성 자체가 경기 보다는 스트리트 파이팅 상황을 염두에 둔 요소가 많고, 스스로 무도를 표방하고 있으니까요.
최영의 씨의 제자로 독립해나간 '싸움 10단' 아시하라 히데유키 씨는, 저서에서 '예전에는 경찰이 오는데 5분이 걸렸는데, 요즘은 2분이면 경찰이 온다'며 시대의 변화에 따른 스트리트 파이팅 여건의 변화를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따른 여러 상황 변화, 사소하고 작은 차이들이 전략과 디테일한 기술의 차이로 이어지게 되면 파이팅 패턴 자체가 바뀌게 마련이지요.
'최대한 빨리 결정짓는다', '넉다운은 최고의 테이크 다운'이라는 세이켄의 철학 역시, 어찌 보면이런 시대의 흐름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셈입니다.
'남들보다 20년 앞선다'고 하는 사야마 씨의 '세이켄'은, 이런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한 새로운 현대 무술을 보여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은 '전통'을 중시합니다. 물론 일본이나 중국도 역사와 전통을 중시해서 역사를 날조하는 무술이 한국 못지 않게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유달리 '무슨 무술의 정통', '누구에게 직접 배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눈에 두드러진 것은, 꼭 다른 나라보다 한국이 유난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통, 역사, 무술의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입니다. 한국에서 전통, 역사, 스승의 이름이란 브랜드가 강세인 것은, 한국 무술인들이 실력여부를 떠나 '무술가 개인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 이미지로서 심어주는데 실패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당장 중국만 해도 '진소왕 태극권', '풍지강 태극권' 같은 명사들은 자신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잘 팔리고 있으니까요.
전혀 유명하지 않은 무명 유파의 계승자가, 자신의 실력만으로 이름을 알린 케이스가 일본에는 적지 않습니다.
그 중에, 제가 한국에서 세미나를 열게 된다면 0순위로 초빙하고 싶은 분 가운데 한 사람.
바로 쿠로다 테츠잔 씨 입니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 무술, 특히 전통무술은 어떤 의미에서 로맨티시즘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수련자들이 무술을 배울 때 상대를 살상할 것까지 염두에두지는 않습니다. 살상을 위해선 맨주먹 보다는 칼이, 칼 보다는 총이, 대포가, 미사일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즉, 한편으로 칼은 지극히 실용적인 '살상 무기'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원시적인 무기에서 '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어떤 '멋'을 느끼고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여기에 비하자면, 실제로 피가 튀고 뼈와 살이 맞부딪치는 종합격투기는 '리얼리즘'에 가깝다 볼 수 있겠지요.
'쇠의 산'이라는 특이한 본명을 가진 쿠로다 테츠잔 씨는 이 전통무술이 가진 로맨티시즘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로, 가전의 다섯유파를 계승하여 집대성한 인물입니다. 쿠로다 테츠잔 씨는 무술잡지 '비전'에 자신의 이론을 정기연재 하고 있는 '검술의 명인'이면서, 합기계의 무술을 하는 인물이 아님에도 아이키 엑스포에 초대되는 유명인사입니다.
검술의 달인이면서 체술의 달인. 단순히 양쪽 다 잘 한다는 레벨이 아니라, 체술과 검술을 구분 없이 익히고 검술의 몸다루기와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체술의 몸다루기를 연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쿠로다 테츠잔 씨의 도장 신부칸은 바로 앞으로 떨어지는 독특한 방식의 전방회전낙법으로 유명한데, 이는 흔히 '무박자'로 표현하는 '상대의 인지를 벗어나는 움직임'을 만드는 기초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체술 안에 검의 원리가 녹아있다'는 모호한 말을 앞세우는 대신, 검술과 체술어느 한 쪽을 보조적으로 연습한다는 개념 없이, 카타[形]의 수련을 '몸의 완성'을 위한 수단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신부칸' 수련의 특징입니다.
쿠로다 테츠잔 씨의 이론은 매우 독특하고, 보여주는 시범은 카리스마가 넘칩니다. 비록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가전 무술을 계승하였지만, 무술가로서 그의 이름을 부정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가 계승한 가전무술 다섯 유파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무술을 아는 사람 중에도 흔하지 않지만,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유파의 이름보다 유명한 개인.
쿠로다 테츠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