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말씀드릴 내용은, 사실 일본 무술에 대해 약간의 지식만 있는 분이면 알고 계실만한 내용입니다.
현행 태권도, 유도, 합기도, 검도, 공수도, 절권도 등 20세기에 들어 정립된 많은 무술들은 몇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중 한가지는 무술 이름 작명법이 한가지 공통된 유행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도'라는 글자로 끝난다는 점.
이 유행은 '니혼덴 코도칸 쥬도'의 창시자 카노 지고로 씨가 무술 시대의 종막을 예언하며 '체육'으로서의 무술 '유도[쥬도]'를 창시한데서 출발합니다. '강도관(도를 가르치는 곳)'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기서 말하는 '도'의 뜻은 -물론 심오한 의미의 도, 무도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만- 엄밀히 말하자면 쿠베르탱이 제창했던 근대 스포츠의 이념중 하나인 운동을 통한 인격 형성, 즉 스포츠맨십을 의미하는 면이 큽니다. IOC 위원을 지내기도 한 카노 지고로의 경력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보통 유도의 성립에 영향을 끼친 무술로 텐신진요류, 키토류 유술을 꼽습니다만, 기술과 경기규칙 등의 제정에 있어 레슬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고류 유술계를 평정한 유도의 붐은 다른 무술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이처럼 무술 이름에 '도'라는 이름을 유행시켰다는 점 외에도, 인증체계의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바둑에서 차용한 '단/급'체계의 도입, 바로 벨트 시스템이 그것입니다.
이전 일본 무술의 수련 체계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형태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초전, 중전, 오전, (비전)
유파에 따라 3단계이기도 하고, 4단계인 경우도 있는데요. 뒷쪽 단계는 기본에 대한 응용기법의 단계라고 할 수 있고 유파마다 구분이 달라집니다만, 초전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통적인 면이 있습니다.
즉 기본이 중요하다, 처음 기초가 단단해야 한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무술에서 초전은 처음 입문자가 배우는 단계이면서 대체로 해당 유파의 '오의', 즉 해당 무술의 핵심을 담고 있다는 것이지요.
보통 각 단계를 수료할 때마다 해당 교육과정의 교육내용(기술 이름)을 적어놓은 족자형 두루말이 -마키모노라고 합니다-를 받게 되는데, 이게 한국에서 소위 '목록'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일정 단계를 이수한 이후에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도장 '사범'자격을 주는데 이를 '교수대리'라 합니다. 태권도나 유도로 말하자면 4단이나 5단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수료하여 더이상 가르칠 게 없으니 독립해도 좋다는 인정을 받게 될 때를 비로소 '면허개전'이라고 합니다. '개전'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전했다는 뜻으로, 유파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6단에서 7단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종래의 복잡한 인증 시스템에 비해 간략하고 직관적인 이 새로운 인증 시스템은, 몇 가지 장점 때문에 근대 이후 정립된 무술 대부분이 도입하기에 이릅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좋다는 장점 -'단증 장사'라는 아니라 수련 기간, 즉 출석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로-, 세부 단계를 마련함으로서 수련자에게 성취동기를 부여한다는 점, 그리고 보급에 용이하다는 점이 그것이지요.
그밖에 대일본무덕회-말하자면 중국무술의 정무체육회 정도?-를 기점으로 퍼지게 된 '연사', '교사', '범사'등의 칭호가 있는데, 보통 연사가 5, 6단 정도, 교사가 6, 7단 정도, 범사가 7, 8단 정도 이상에 붙습니다. 대한검도회에서 말하는 '연사, 교사, 범사' 칭호 역시 일본의 그것과 완전히 같은 것이라 보시면 됩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일본에는 전통적으로 목조 가옥이 많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도 지은지 30년 된 목조 2층집입니다. 오래된 목조 가옥은 태풍이나 내리치는 빗발 같은 윗쪽에서 부터의 압력에는 그럭저럭 버팁니다만, 좌우로 흔들리는 지진파에는 쉽사리 무너지는 편이라고 하지요.
일본의 도장 사정은 사실 한국과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연이어 개최되는 격투기 시합,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도, 검도, 카라테 등의 현대 무술, 그밖의 각종 고류 무술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일본은 무술의 천국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한 편으로 도장 한 군데 없는 동네가 대부분인 것이 일본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한국처럼 일본에 봉고차 운행하는 도장이 있다면 떼돈을 벌 것'이란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만, 이게 꼭 농담만은 아닌 것이 일본의 현실이지요.
대부분의 일본 무술가들은 - 우리가 이름쯤 들어보았음직한 유파를 포함하여 - 자기 무술 이름으로 된 상설 도장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동류 육방회 (다이토류 록포카이) 처럼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체육시설을 특정 요일 특정 시간대만 임대한다든가, 대동류 행도회 (다이토류 코도카이) 처럼 다른 용도의 사설 체육관을 특정 요일 특정 시간대만 임대해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때문에 수련일자에 따라 수련장소가 종종 바뀌기도 하고, 아무리 유명 무술 종가라 해도 일주일에 한두번, 주말 한두시간만 수련하는 '파트타임 무술가'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오노하 잇토류의 사사모리 종가나, 대동류의 콘도 본부장 처럼 조금 여유가 있는 개인사업자의 경우는 자기 직장에 도장을 갖추어 놓고 있는 경우도 드물게는 있습니다만, 보통 메이저 무술이 아닌 이상 상설 도장을 가진 전업 무술가는 극히 드물고, 그나마 도장을 갖고 있어도 허름하고 낙후된 건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무술로 돈을 벌기는 어렵다는 말이지요.
공공체육시설을 빌려 운동하는 경우는 차라리 낫습니다만, 허름한 상설 도장을 갖고 있는 분들이나, 혹은 남의 도장을 일정시간만 빌려서 운동하던 분들은 어느정도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의 불안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지진만 해도 토쿄 인근이야 괜찮겠습니다만, '코시히카리'의 본고장 니이가타 지역이라면 낡은 목조 도장이 무사하지 못했을 수 있으니까요.